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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 vs '한자혼용'…헌재, 국어기본법 위헌확인 공개변론


  한글'을 우리 고유문자로 정하고 공문서 등에서 한글 사용만을 원칙으로 규정한 국어기본법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심리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12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국어기본법이 한글을 전용으로 사용하고 한자 사용을 배제하는 것은 언어를 통한 인격발현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위헌 측 주장과, 국어 발전을 위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언어 인권에 이바지한다는 합헌 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기사 저작권상 생략)





  현재 국어기본법에는 한글과 한글 전용 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3조

1.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

2.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

제14조

① 공공기관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

② 공공기관등이 작성하는 공문서의 한글 사용에 관하여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한글은 현재 대한민국의 공용어인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공식적인 수단이고, 이에 따라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되어야 한다. 한글이 한국의 고유문자이기 때문에 한국의 나랏일을 다루는 공문서는 한글로 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항을 보면 맞는 이야기로 보이고, 실제로 논리도 보편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규정이 최근 일부 어문단체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위의 기사와 같이, 국어기본법의 위 조항들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공용어는 한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 공용어를 담는 문자 역시 그 나라의 개성이다. 이번 헌법소원의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의 사회, 문화적 생활 전반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국한문혼용),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한글전용론


 한글전용론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의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어 해석)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맞지 아니할세.
이런 까닭으로 어린(미숙한)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얻어(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 쉬이(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출처 : 

위키백과 <훈민정음> https://ko.wikipedia.org/wiki/%ED%9B%88%EB%AF%BC%EC%A0%95%EC%9D%8C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적에는 국가의 주류 문자가 한자였다. 중국이 세계 강국으로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위세를 떨치고 있었고,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 역시 많은 부문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특히 한민족은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아주 먼 옛날부터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마침 고유 문자가 없던 상황에서 중국의 글자를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불교, 유학 등이 중국으로부터 전래됨으로써 한자와 한문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나 한자는 근본적으로 한국어와는 맞지 않았다. 한자는 상형문자에서 비롯된 표의문자(뜻글자)이고, 중국말(옛날 중국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은 낱말이 형태 변화를 겪지 않고 그대로 표기되는 고립어이다. 중국어는 형태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뜻에 맞는 글자를 갖다놓으면 되는 한자는 찰떡궁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어는 교착어이다. 어근에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요소가 붙는다. 그러나 한자에는 문법 기능을 나타내는 글자가 부족하며 한국어의 문법과 잘 맞지 않는다.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에 있어 한자는 여러모로 부족한 문자였다. 조상들은 이두와 향찰 등의 방법을 고안해내어 한국어의 본모습을 겨우 적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맞지 아니할세'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담은 구절이다.


  한자가 비록 한국어를 표현함에 있어 어려운 문자기는 했지만 식자층에서 한자는 여전히 중요하고 유용한 문자였다. 학습서, 학술서, 공문서, 교양서 등이 한문 위주로 적혀 있었고 중국의 학문, 논리체계 일부 등을 국가 통치와 사회 유지의 이념으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왕족, 양반 등 사회 지도층에게는 한자가 요긴하게 쓰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자는 배우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높으신 분들이야 한자를 배울 여건이 충분했지만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서민층은 한자를 충분히 배우기 어려웠다. 한자 자체도 모양이 많이 추상화되어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고 외워야 할 글자도 많았다. 교육의 혜택을 많이 누리고 있는 현대인조차도 한자를 익히기 힘들어하는데, 조선시대 서민층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공문서의 거의 전부는 국민 대다수가 잘 알지 못하는, 한자로 쓰여 있었다. 국가 행정이 국민 대다수를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백성들은 한자를 알지 못해 억울한 일을 겪거나, 신분 상승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이것이 그 다음 3줄의 내용이다.


  결국 이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세종대왕은 혼자 문자 발명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 언어학, 음성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수많은 책을 읽어가며 한글 자모와 그 조합법을 고안해내신 것이다. 여기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우리말에 맞는 글자를 써야 한다는 생각, 생활 편의를 도모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고스란히 한글전용론의 근거가 된다.


  근거를 다른 시각에서 더 찾아보면, 한자는 모양이 복잡하고 직관적으로 해독하기 어렵다. 정보화 측면에서도 한글보다 한자가 더 뒤쳐진다. 한글은 바로바로 타이핑할 수 있고 서체 역시 조합의 원리에 따라 제작이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한자는 입력의 편의성이 낮고 서체를 제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1. 한자만으로는 한국어를 제대로 표기할 수 없다.

2. 한자는 접근성이 떨어지며, 한자 취약 계층을 철저히 배척한다.

3. 한자는 정보 격차 문제를 발생시키고 기존 기득권의 이익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1. 한국어는 한국어에 최적화된 문자인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

2.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 아무도 문자 사용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3. 한글은 이해가 쉽고 정보화에 유리하여 정보 불균형을 해소한다. 한글 사용으로 인한 사회적 이익은 일반 국민에게도 돌아간다.


  이러한 근거로 한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더 쓸 수는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고 내용도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한다.



국한문혼용론


  그러나 국한문혼용론자의 견해는 다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시 살펴보자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한자를 보조하기 위해 창제했다는 설이 있다. 이상적인 한자음과 그 표준을 한글로 표기한 <동국정운>의 편찬이 그것이다. 한자가 잘못 발음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중국어 발음을 참고하여 이상적인 한자음을 정립한 것이다. 이때 정한 한자음을 표기한 수단이 바로 한글이다. 세종대왕은 아니지만 최세진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간행하며 한자 교육의 편리함을 위해 한글 자모의 이름을 정한 것도 이와 통한다. 또한 한글이 풀어쓰기가 아니라 음절별 모아쓰기를 채택한 것도 한자의 음절 단위 표기에 맞춘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국한문혼용론의 또다른 근거로 한국어에서 한자 낱말이 차지하는 비중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현대 한국어에서 한자 낱말이 70%나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낱말 중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57%라고 한다. 비록 부풀려지기는 했지만 비중이 어마어마하다. 단순 수치를 벗어나 현실적인 눈으로 살펴봐도 한자어의 비중은 상당히 높다. 당장 책 하나(한글학회 등 한글전용론자들의 책은 제외한다)를 꺼내 아무 장이나 펼쳐보면 한자어가 많이 쓰임을 알 수 있다. 혼용론자들은 이렇게 한자어가 한국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한자 교육과 사용이 부진한 것은 큰 문제라고 본다. 한자를 모르니 한자어의 뜻을 이해하기 힘들고 동음이의어를 제대로 구별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또한 한자는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축적된 문화적 유산이 상당하다. 고사성어나 한자 관용어 등을 제대로 알면 교양도 쌓이고 문학작품 등의 컨텐츠를 이해하기도 좋지 않은가. 한자 비중이 많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한자를 모르는 것은 한국어를 반쪽만 아는 것과 같다. 국한문혼용론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단체 중 하나인 한국어문회는 '한글과 한자는 국어의 두 날개'라고 말한다.


  국한문혼용론은 과거 한자가 주된 문자였기 때문에 문맹률이 컸다는 한글전용론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문맹률이 높았던 것은 한자 사용 때문이 아니라 교육기회의 부족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고유 문자와 한자를 섞어서 사용하는 일본의 문해율은 99%이고, 한자만 사용하는 중국과 대만 역시 90%대 이상을 기록한다. 만약 한자가 한글전용론자의 말대로 접근성이 지나치게 높았다면 중국과 일본의 문해율이 이렇게 높을 리가 없다. 물론 한자가 한글에 비해 습득 난이도가 높기는 하지만 이것은 한자 교육의 확대로 해결할 수 있다. 교육 기회만 충분하다면 한자를 무리없이 습득할 수 있다.


  한자는 세계화 시대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세계 경제와 문화의 한 흐름을 담당하는 한중일 삼국은 한자라는 공통문자로 엮여 있다. 한국인이 한자를 잘 알고 국가에서도 한자 사용을 장려하면 나머지 두 나라의 사람이 한국어를 따로 배우지 않고도 한국을 방문하고 여행하는데 어려움이 덜하다. 삼국의 사람들끼리 한자로 필담도 가능하여 국가 간 교류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은 세 언어 중 하나+한자만 배워도 나머지 두 나라를 접하는 데 들어가는 수고가 절약된다.


  이들 견해를 정리하자면


1. 한글은 한자의 보조 수단을 겸하여 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2. 한국어는 한자어에 상당 부분을 의존한다.

3.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한자를 모르는 것은 한국어를 반쪽만 알고 쓰는 것과 같다.


  결국


1. 한자교육이 확대된다면 한자를 습득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2. 한자는 동음이의어를 구별하고 낱말의 뜻을 이해하며 언어생활 교양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3. 한자를 알면 한자 문화권에 속한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보다 쉬워진다.


  이러한 근거로 우리는 한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된다. 역시 더 많은 근거가 있지만 생략하였다.



필자의 견해


  필자는 한자 교육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국한문혼용에는 반대한다. 우선 한자는 진입장벽이 한글보다 높아 정보 격차와 취약 계층의 소외를 불러온다. 공문서나 법률 등에는 어려운 단어를 쓰기 마련인데 한자까지 사용된다면 국가 정책과 행정을 국민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자는 의도치 않게 기득권의 이익을 수호하고 현 체제의 개선을 방해할 수 있다. 한자는 비민주적인 문자이다. 시각적으로도 글자가 바로바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일상생활에서의 피로감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한자는 정보화 시대에도 부적절하다. 입력의 불편함이나 온라인 진입장벽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 결국 현 국어기본법의 헌법소원은 시대 상황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가 한자에 의존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특히 학계, 교양 분야 등에서는 한자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그런 점에서 한자를 알아두면 한국어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고사성어, 고전문학, 유교문화 등 한자를 알면 이해할 수 있는 문화 요소가 많다. 일상생활과 국가운영의 전반에 한자를 개입시키는 건 지나치다고 하더라도 한자를 배워서 이득이 되면 되었지 안 좋은 점이 없다. 또한 공교육에 한자교육을 확대하면 저소득층도 한자를 잘 배울 수 있어 학습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이것이 학생들의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자는 한자(한문) 과목에서만 끝내고 학생들이 한자능력으로 인해 다른 과목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3시간 동안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 논리적 허점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